1970년대 동해안 갯벌 위에 철강산업으로 '영일만의 기적'을 이루어내며 대한민국 산업화를 주도한 경북 포항시가 벼랑 끝 위기에서 새로운 희망을 그려가고 있다. 철강산업의 침체와 지진 피해,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 등 어려움을 넘기 위해 산업구조 다변화를 모색하고 다가올 미래 4차산업혁명에 대비해 '제2의 반도체'로 불리는 배터리산업에 초점을 맞췄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그린뉴딜' 분야와도 궤를 맞춰 미래 성장동력을 급속 충전 중이다.
◆전기차 시장 폭발적 성장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대기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추세를 반영하듯 2017년 120만대 규모였던 전 세계 전기차 시장 규모는 2019년 들어 200만대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에선 올해 전기차 세계 생산이 400만대를 돌파하면서 본격 궤도에 오를 것으로 본다.
국내외 각종 연구기관 조사에 따르면 이 같은 성장세는 2025년까지 이어져 1천200만대에 이른다. 이어 2030년에는 2천800만대, 2040년에는 5천600만대의 전기차가 판매될 것이라고 추정된다.
미국 BNEF(Bloomberg new energy finance)의 전기차 전망 보고서는 2040년이 되면 출고되는 자동차 절반이 배터리로 구동되는 전기차(BEV·Battery Electric Vehicle)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 뒤를 내연기관(ICE·Internal Combustion Engine)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PHEV·Plugin Hybrid Electric Vehicle)가 이을 것으로 전망했다.
전기차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에 맞춰 배터리 시장 역시 급성장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흔히 배터리산업을 '제2의 반도체산업'이라고 부른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규모는 연평균 25%씩 성장해 2025년 약 182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2025년 약 169조 원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측되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보다 큰 수준이다.
전기차와 배터리산업의 급성장에 맞물려 주목받는 관련 산업이 배터리 리사이클링 분야이다. 세계적인 경제 전문 언론사 블룸버그는 배터리 리사이클링 시장이 2015년 179억원에서 2050년 약 600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유럽과 미국, 중국, 일본 등을 중심으로 배터리 리사이클링 시장에 대규모 투자가 몰리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배터리 리사이클 시장도 급팽창
경상북도와 포항시는 지난해 4차산업혁명 시대를 위해 중소기업벤처부가 도입한 규제자유특구 공모에 참여해 새로운 도약 기회를 잡았다. 지난해 7월 24일 경북(포항)이 전국 6개 광역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에 최종 선정된 것이다. 규제자유특구는 규제로 인해 시험이 불가능한 혁신기술을 제약 없이 테스트할 수 있는 곳이다.
포항 북구 영일만산단 일원이 배터리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배경에는 포항이 최적의 배후와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포항은 국내 이차전지생산의 선두기업인 에코프로, 미래 산업을 위한 투자의 일환으로 음극재 공장 건립을 추진 중인 포스코케미칼 등 관련 기업이 집적해 있다. 또 세계적인 첨단과학 연구소와 인력이 밀집한 포스텍이 자리잡았다.
특히 배터리 관련 분야의 전문 현장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과 방사광가속기연구소,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이차전지소재연구센터, 나노융합기술원 등 세계 최고 수준의 R&D 인프라가 있어 배터리산업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여기에다 환동해중심도시를 기치로 조성된 국제 규격 컨테이너 항만인 영일만항과 충분한 공간의 배후산업단지는 포항시가 배터리산업을 국제적으로 선도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관련 업계의 빅(Big)3로 불리는 대기업들이 잇따라 포항에 인프라 투자를 결정하면서 관련 기업들의 활발한 투자와 참여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배터리산업 1번지 우뚝
선두기업인 에코프로가 이차전지 양극소재 생산공장을 신설하기 위해 2023년까지 6년간 1조5천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포스코케미칼도 배터리 소재산업 육성을 위해 2030년까지 10조 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밝혔다.
GS건설은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특구실증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4년간 1천억 원을 투자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이 밖에도 6개 특구사업자와 20개 협력사업자 등 배터리 관련 기업들이 포항 공장 건립을 위한 업무협약 등 차세대 배터리산업과 관련된 기업들의 투자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당시 투자협약식에 참석했던 문 대통령은 "이번 협약은 포항시가 미래 차세대 주력사업을 시작하는 도시로서 새로운 활력과 확실한 변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정부는 포항시가 그동안 움츠렸던 가슴을 활짝 펴고 '철강산업 메카도시'로의 위상을 단단하게 다지는 동시에 '차세대 배터리산업 선도 도시'로 거듭 도약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중소벤처기업부도 포항이 이차전지의 '소재(양극재·음극재)-배터리-리사이클'로 이어지는 배터리산업 생태계를 완성하게 되면 명실상부한 배터리산업 선도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자료에 따르면 경북 규제자유특구는 2025년까지 연평균 26% 성장이 기대되는 이차전지산업의 소재공급 전진기지로 성장하고, 2022년 이후에는 이차전지 소재분야에서 연간 8천억원(세계시장 5.7%)의 직·간접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코로나19 사태를 비롯해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도 관련 기업들의 연이은 투자는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배터리산업 선도 도시로서 미래 산업 발전을 주도하고 나아가 국가경제에도 크게 이바지할 수 있도록 모든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포항시는 신소재연구소 설립, 이차전지용 핵심소재 고성능화 지원, 이차전지 안전테스트 기반 구축 등을 내용으로 하는 가속기 기반 '차세대 배터리파크' 조성도 적극 추진하는 한편 민·관·학·연 등의 공동협력을 바탕으로 지역 내 배터리 혁신 산업인력을 양성해 배터리 산업생태계 조성에 활력을 더하고 향후 4년간 3천명 이상의 직접 고용 등 일자리 창출에도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